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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0회 작성일 24-01-2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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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나해 2024)


마르 1, 21-28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당신의 거룩한 권위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십니다. 이를 본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라며 너무나 놀라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높아짐에서가 아니라 낮아짐에서 오는 권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권위는 높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다스리거나 권력이나 명예, 재물 등으로 통치하려하는 것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지만 예수님께서 그렇지 않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구세주이시면서 메시아로써의 당연히 받아야 하며 누려야 하는 권위를 포기하시고, 심지어 하느님의 자리까지 내어놓으시고 하찮은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더 나아가 인가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을 모두 내어주시는 낮추임의 진정한 권위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모습에서 나오는 권위는 세상의 어느 무엇보다 높고 거룩하고 마땅한 권위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미군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시체를 전쟁터에 그냥 방치해 두고 싶지 않아서 개신교식 장례를 치러 주기로 했는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묘지가 딸린 성당을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우의 시체를 가져갔고 해가 지기 전에야 겨우 그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허리가 굽고 나이 드신 신부님이 그들을 맞아들였습니다. 한 병사가 정중하게 그 신부님께 말을 꺼냈습니다. “친구가 전쟁터에서 숨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이곳에 묻어 주고 싶습니다.” 그 프랑스인이신 신부님은 병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지만 아주 서투른 영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이곳에 묻어 줄 수가 없습니다.”

지친 병사들은 서운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은 채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습나다. 그러자 나이 드신 신부님은 그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울타리 밖에 묻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 말에 그들은 화가 나긴 했지만 하얀 울타리 밖에 땅을 파고 친구를 묻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전선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친구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그곳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친구를 묻은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한 병사들은 성당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묻은 자리를 알고 있는지 나이 드신 신부님께 물었습니다. 그 말에 신부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젯밤 댁들이 떠난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울타리를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울타리를 옮겨 놓는 그 이상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아예 울타리를 없애버리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주님의 권위는 우리가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는 세상의 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보고 아예 없애버리시는 것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하느님의 신분을 모두 버리시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당신의 울타리를 모두 없애버리신 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거룩하고 진정한 권위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것을 버리고 치워버릴 때 나의 권위가 드러나고 그 권위 안에서 바로 사랑이 우러나오며 그 사랑이 세상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음을, 세상의 더러운 영을 쫓아낼 수 있음을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인지해야 합니다. 진정한 권위는 낮추고 버림에 의해서 나오며 낮추고 버림은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기에 진정한 권위는 사랑을 바탕으로 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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