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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죄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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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9회 작성일 24-01-1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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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두고,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다는 율법 학자들의 주장에 논쟁을 펼치십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을 통해, 죄를 용서한다는 것의 의미를 묵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죄라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드는 모든 유혹들에 의해, 그분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은총의 상태에서 점점 우리를 무감각하게 하는 모든 행위들이 아닐까 합니다.

죄의 유혹은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부분을 교묘하게 잘 이용합니다. 육체적, 감각적인 자극은 우리의 정신적인 부분까지 쉽게 파고 들어가며, 그 곳에 자리하게 되면, 우리의 판단력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신앙에 있어서, 이 판단력을 식별이라고 합니다.
끊임없는 식별의 여정에서 무엇이 그분께서 원하시는 뜻인지, 무엇이 세상과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그 기준을 상실하게 되면, 당연히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지요.

율법학자들은 율법 준수에 철저했기에, 그들 자신들은 죄라는 영역보다 구원이라는 영역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율법에는 가까이 있었지만, 하느님께는 멀리 있었던 이들이지요. 율법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하느님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의 하느님이 아닌, 그들만의 하느님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갔던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하느님만이 참된 하느님이며, 그분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여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이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하느님의 존재는 죄와 무관하지만, 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을 위해서, 죄라는 영역을 늘 마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마주함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 예수님의 함께 함이 있기에, 우리는 죄 속에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바라보며,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함께 함이 바로 죄의 용서일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항상 받아주심으로, 모든 이를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그분께 우리는 어떠한 마음을 지니며, 어떠한 응답을 드리고 있는지 묵상해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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