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님들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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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98회 작성일 21-03-12 16:49본문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십니다. 인간의 창조주가 인간들에게 심판을 받고, 사형을 언도 받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자신의 창조주를 알아보지도 못하더니 이제는 죽이겠다니. 그래서 저는 심판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며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저 자신도 이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 역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제 이웃을 함부로 심판하였습니다. 이웃을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심판한 사람들을 향한 그 손가락이 이제 저를 향하고 있습니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게 될 십자가 형틀을 직접 지고 언덕길을 오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이 길이 부활로 이어지는 그리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 될 것임을 아셨기에 묵묵히 지고 걸으십니다. 그리고 저희들에게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저희들 자신에게도 영광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영광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넘어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 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고자 우리를 부르셨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가 되기를 원하였고 그래서 기꺼이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유일하게 주님께 다가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것을 요청 받았을 때,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아셨을까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러 가셨을 때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시메온의 말을 듣고 나서, 아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셨을까요? 일생을 함께 하신 두 분은 이제 고통 안에서 하나가 되십니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도 성모님을 통하여 오셨습니다. 공생활 동안에는 당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에서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함께 합니다. 시몬은 자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것은 아니지만 은총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잠시나마 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생각지 못한 때에 비록 우리가 모르더라도 주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통해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함께 하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잠시나마 대신 지고 가는 은총의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베로니카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완전하였습니다. 완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창으로 밀쳐대는 로마 군사의 완력에 굴하지 않고 베로니카는 예수님께 다가가 피땀으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저희도 주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자라나 그 사랑이 완전하게 되도록 해 주소서.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또 넘어지십니다. 인간을 위한 구속사업이 완성되려면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 올라 당신의 피로 인간의 죗값을 치르셔야 합니다. 하지만 육신의 나약함이 자꾸만 발목을 잡습니다. 저희도 저희의 나약함 때문에 주님께 다가가는 길에서 수 없이 넘어집니다. 주님, 주님께서 인간이 저지른 죄의 무게 때문에 자꾸만 넘어지심과 같이 저희도 넘어짐을 자비로이 용서하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소서.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고통으로 피땀을 흘리시면서도 슬퍼하고 있는 저희들을 오히려 위로하여 주십니다. 사실 저희는 주님을 위로해 드리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힘드신 모습을 보면서도 염치불구하고 청을 하나 드립니다. 주님, 저희를 위로해 주소서. 저희는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미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십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넘어지실 때에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저입니다. 예수님께 죄의 무게를 더하여 두 번이나 넘어지시게 만든 저이지만, 아직도 저의 삶은 죄를 짓고 뉘우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하는 저의 나약함이 다시 또 주님을 넘어지시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여 고개를 떨굽니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인간들이 자신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부끄러워했을 때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의 옷을 벗겨 수치심을 안겨줍니다. 그 수치심은 저의 죄로 인하여 이제 저에게 입혀집니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주님, 얼마나 처참한 광경인가 생각해 봅니다.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이신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아서 나무에 고정시켜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거기서 내려와 보라며 비웃고 있습니다. 처참한 몰골로 그저 끊임없는 고통에 괴로워만 하시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예수님, 제자들 중에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마음 아파하면서도 이분이 정말 우리의 구세주이신가 하는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몹시 두렵고 송구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주님, 저의 신앙 여정에서 저의 약함을 건드리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의 무기력한 예수님의 죽음이 저희들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음을 깨달아 저의 약함이 주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길임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은총 내려주소서.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의 죄명은 신성모독입니다. 하지만 지금 십자가에 달려 계신 분은 참 하느님이십니다. 또 하나 예수님은 율법의 조항을 글자 그대로 지키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창조물이 자신의 창조주를 죽였습니다. 주님, 저도 저의 얄팍한 생각으로 이웃을 판단하여 마음속으로나마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이제 예수님께 가해지던 조롱과 모욕과 육체적인 고통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예수님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성모님의 고통을 조금아니마저희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주시어 성모님께서 행하셨던 예수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저희도 부분적으로나마 따라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무덤 입구도 막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분을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뵙고자하는 그 지극한 열망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어두운 밤에 집에서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주님, 저희도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열망을 본받아 보다 큰 사랑으로 주님을 찾게 하시고 마침내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전흥준 미카엘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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