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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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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631회 작성일 20-05-3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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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이름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무엇일까. 전수조사를 하지 못해 정확한 순위를 낼 순 없지만, 1,2,3위 상위권을 다툴 것으로 예상되는 세 이름은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체칠리아 성가대, 아가페 성가대, 마니피캇 성가대가 아닐까 싶다. 체칠리아는 음악가의 수호성녀이고, 아가페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성가대 이름으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성가대 이름으로 흔히 사용되는 마니피캇은 무슨 뜻일까.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 그 유명한 마리아의 노래를 부른다.(루카 1,46-55) 이 노래 첫 마디가 찬양하다, 찬송하다는 뜻의 라틴어 마니피캇’(magnificat)이다. 마니피캇은 마리아가 행복감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존재 의미에 대한 깨달음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엮여 있다. 따라서 이 노래에 푹 빠져들다 보면 우리도 마리아의 행복 잔치에 함께 할 수 있다. 마리아의 노래, 루카복음 146-55절 내용 중, 46-50절까지는 개인적인 감사를, 51-55절은 구원 약속을 이행하신데 대한 하느님 백성 전체의 감사를 담고 있다. 이제 기도 장인(匠人) 마리아가 만든 명품 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해 보자.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루카 1,46-47)

2000년 전 당시 학식 있는 유대인이 이 구절을 접했다면 곧바로 기원전 620년 경 구약 예언자 하바쿡의 노래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바쿡은 환시 속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하바 3,18) 이처럼 하느님 안에서 용약하는 것은 위대한 예언자들이 범접할 수 있는 경지였다. 그래서 마리아의 노래를 들은 2000년 전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뛸 수 있다니. 저 처녀가 참으로 하느님을 만났구나. 저 처녀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구나.’

그랬다.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을 품었고, 지금 그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루카 1,48)

마리아가 기뻐서 뛰는 이유는 하느님이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이다. 비천한 종인 자신을 통해 이제 메시아가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모든 세대가 비천한 자신을 찬양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엘리사벳이 앞서 마리아를 행복한 여인으로 불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찬양이 세세대대로 계속해서 자신에게 적용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 성경구절로 이어진다. 하느님이 마리아를 통해 큰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카 1,49-50)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선 구약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요즘이야 큰일을 했다는 표현이 좀 중요한 일을 했구나정도로 이해되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 표현은 진짜로 큰일이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구원업적(신명 10,21), 바빌론으로부터의 해방(예레 33,3)이 그에 해당했다. 그래서 마리아가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것은 구약에 있었던 사건들과 같은 엄청난 일이 자신을 통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사실, 동정녀를 통해 구세주가 오신다는 것만큼 큰일이 또 있겠는가.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마리아는 알고 있다. 구원은 가치의 전복 혹은 반전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말이다. 동정녀 잉태 이후, 이제는 교만한자 권세 있는 자, 부유한 자들이 내쳐질 것이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이, 비천한 이, 굶주린 이들은 높아질 것이다. 마리아가 체험한 이 하느님 자비는 이제 하느님 백성 전체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54-55)

믿음과 순명의 대명사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백성만의 구원을 약속받은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유대인만이 하느님이 아니었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2,17-18)

믿음과 순명의 대명사 마리아는 이 약속이 여전히 유효함을 말하고 있다. 이제 그 약속은 동정녀 마리아를 거쳐 세상에 오시는 아기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이 점에서 마리아의 노래는 단순히 마리아 개인의 노래가 아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에 내리는 구원을 말하고 있기에 우리 모두의 노래가 된다.

 

기도 : 내 인생의 의미, 나의 사명에 대해 주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언젠가는 내게도 성모님처럼 마니피캇을 부를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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