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_구세주 콤플렉스(savior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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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09회 작성일 21-05-20 10:00본문
허리가 휜다. 짐을 벗어 던지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턱턱 안겨주는데,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즘 사람들…. 무거운 콤플렉스 덩어리 3~4개씩 잔뜩 안고 살아간다. 언젠가는 멋진 남자를 만나서 신분이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부모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형제의 심리적 갈등이나 적대감을 의미하는 카인 콤플렉스, 늙지 않으려는 피터팬 콤플렉스,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보헤미안 콤플렉스…. 여기에 외모 콤플렉스, 왕따 콤플렉스, 학력 콤플렉스 등 한국사회 토종(변종) 콤플렉스까지 첨가시키면 우리를 포위 압박하고 있는 콤플렉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왕 중의 왕, 콤플렉스 중의 콤플렉스가 있다. 모든 콤플렉스들의 뿌리를 찾아 가다보면 어쩌면 이 콤플렉스에 닿을 지도 모른다.‘구세주 콤플렉스’가 그것이다.“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어”“내가 없으면 우리 회사는 망할거야” “내 판단이 가장 옳아”“너는 틀려, 내 생각대로 해!”등의 심리가 구세주 콤플렉스의 전형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나마 몇 가지 안다는 것도 대부분 잘못된 지식과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은 뇌의 능력 중 10% 정도만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틀렸다. 놀고 있는 90%의 뇌는 없다. 0.1%의 뇌 손상만으로도 인간은 중풍, 우울증 등 질병을 앓을 수 있다. 유아에게 모차르트 등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지능지수(IQ)가 높아진다는 것도 잘못된 사실로 판명난지 오래다. 화를 참기보다 터뜨리는 것이 낫다는 것도 틀렸다. 최근 심리학은 화가 날 때 그대로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오히려 공격적 성향을 키운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의 앎이 부정확 하다면, 그 앎에 근거해 나와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일은 과연 어떤 정당성을 지닐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얕은 앎을 절대화 하는 오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모르고 있으면서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적게 알고 있으면서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포장한다.
오만하다. 무한(無限) 앞에서 무릎 꿇고 유한(有限)을 고백하는 신앙인이라면 나의 앎, 나의 지식, 나의 판단을 절대화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한국사회 갈등과 분열의 위기는 어쩌면, “내가 옳다. 그러니 너희들도 내 생각대로 따라야 한다”는 구세주 콤플렉스의 만연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등 종교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15세기 철학자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추기경은 ‘무지(無知)의 지(知)’를 말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하느님의 섭리는 심오하다. 신앙인이라면 겸손해야 한다. 오만하면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 구세주 콤플렉스는 우리 각자는 물론이고 교회와 한국사회를 어그러짐의 땅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오만함의 바벨탑을 무너뜨려야 한다. 저 높은 곳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는 신비 그 자체에 의지해야 한다.
“내가 옳아”“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나와 너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할 때, 올바른 자유의지 실행의 힘을 얻는다”가 되어야 한다. 구세주를 등에 모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나귀는 나귀가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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