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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무관심과 외면 속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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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01회 작성일 22-03-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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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왜 불의 고통의 결과가 주어졌겠습니까? 그가 부자라고 해서,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살았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관심과 외면의 결과입니다.

 

라자로는 비참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도와달라는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자로는 죽음을 통해서 진정한 해방을 만끽합니다. 그의 세상에서 전혀 존재할 수 없는 듯한 평화와 안식, 포근함을 느끼게 됩니다.

 

부자는 생명의 존엄성, 그 가치를 외면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라자로가 그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했지만 그는 라자로를 없는 듯이 자신의 삶만 누리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살아간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단순히 자신의 것을 집착한 나머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 동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외면해야 했던 것,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관심 속에서 외면을 선택한 것입니다. 주위의 시선과 자신이 만든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사랑을 포기합니다. 고귀한 생명을 포기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쓰러진 이를 돌보지 않고 외면해 버린 사제들, 레위인이 되고야 맙니다.

 

이 세대가 그렇지만,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란 참으로 쉽습니다. 눈 앞에 있어도 보려하지 않고, 자연스레 들리는 말이 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실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인정하지 않고 거짓을 주장하며,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외면하는 살인과 같은 행위입니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살인이 아닙니다. 오늘 부자처럼 자신의 삶을 위해 외면하고 무관심 속에서 방치할 때, 그분 보시기 그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의 한 사람일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우리 주위에 라자로를 찾아봅시다. 라자로를 살리는 신앙인이 될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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