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사순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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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617회 작성일 22-03-05 21:36본문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성령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더 많이 받을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합니다. 저 또한 성령을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많이 받으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시어 유혹을 받도록 이끄시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성령을 받는다고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유혹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 곁에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유혹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극복해 나가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남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전하는 악마의 유혹 중에서 저는 두 번째 유혹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악마는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예수님께 말합니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영광은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5)
제가 피정을 할 때 피정 지도를 하시는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팡파르를 울리면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저도 잠시 속으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셨다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던 사람들이 얼마나 통쾌해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가져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이 세상이 영광을 추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나타나지 않으셨다는 설명을 듣고 저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의 가치와 전혀 무관하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보는 것은 신앙인의 길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나보다는 하느님을 위한 무언가를 한 가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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