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인격적 친교과 사랑 안에서 함께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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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85회 작성일 22-07-02 11:09본문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예수님의 이 답변에서 "함께 있는 동안에"라는 표현을 묵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단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함께 하는 것’에 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사랑에 함께 하기 위해서, 지상의 양식보다 썩어 없어지지 않는 천상의 양식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아시다시피 진정으로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장소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간적 함께 있음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각자에게 맡겨진 다른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해, 즉 목적성 함께 함의 모습이 자주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격적, 공동의 지향이 아닌 개별적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알고 있었던 함께 함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목적성 함께 함을 바탕으로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격적 존재로서 공동선을 위한 함께 함을 지향할 때 성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함께 함'은 개별적 목적의 성취가 우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목적은 자연스럽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 함께 함은 인격적 존재를 느끼는 것으로, 공간적 함께 함보다 내면의 함께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주 함께 있지 않아도 그저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서로에 대한 불편함 없이, 언제 어디서든지 신뢰를 갖고 친교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사회적 관계 안에서 목적성 함께 함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만나야 되는 이들과 모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에 그치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진정한 함께 함을 통해 목적성 만남을 초월하며, 인격적 사랑과 내면의 친교를 위한 만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분명 그분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함께 있는 동안에"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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