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연중 17주일(아버지와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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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13회 작성일 22-07-23 22:57본문
오늘 복음은 크게 두 장면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에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시는 예수님의 응답과 진실된 믿음 안에서 아버지께 청하며,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문 두드리라고 당부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청하는 자와 청해야 하는 대상의 구분입니다. 청하는 자는 그 청함이 이루어질 수 있는 대상에게 청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간청을 들어주시는 분께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여기에 그친다면, 우리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져, 그분과 우리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오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청원은 현실적인 청원이 아닌, 이상적이며, 오직 자신의 기대에 대한 충족에 그쳐 버리는 미신적인 행위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보다는 그저 운이 좋아서 이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 안에서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청원과 그분의 응답이 시작되고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청하는 이유는 그분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이유 역시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 역시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믿는 가운데, 아버지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그분의 나라가 완성되기 위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 안에서 그분께 청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꼭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만을 주십니다. 필요하지 않는 것은 청해도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디서부터 왔으며, 자녀로서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자신만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분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하나의 달콤한 유혹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과 자녀’라는 불가분한 관계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께 무엇을 청하고 있으며, 그것이 그분 안에 속한 것인지 묵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 가톨릭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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