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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대림4주일(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신앙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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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777회 작성일 22-12-1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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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한 주만 지나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3주간 동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 왔고, 이 기다림의 마지막 주간을 보낼 것입니다.

 

림 마지막 주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에 있어서 요셉 성인의 역할과 공로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 성인의 모습과 마음은 주님의 천사를 만나기 전과 후, 이렇게 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 천사의 현현 전, 요셉 성인은 자신과 세상이 말하는 의로움을 기준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갔던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의 논리와 인과관계 안에서, 마리아의 잉태는 절대로 받아들여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생각을 굳혔습니다. 만약 그 어떤 이에게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역시 파혼을 결심할 것입니다.

 

기서 요셉은 자신과 세상의 의로움이 신앙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의 신앙은 현실에 부합한 정의로운 신앙으로 존재해야 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하느님이란 인간 삶의 정의로움에 합당하게 존재하셔야 하는 분이셨던 것이지요. 그러기에 요셉은 당연히 파혼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신앙적 가치관과 사고 방식이 분명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쳤기에 다른 어떠한 상황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조건 옳다는 것이라는 그의 판단으로 인해 더 넓고 더 큰 옳음과 정의로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러한 상황에서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천사의 이 말은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음성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는 그의 귀를 의심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지켜 온 그분에 대한 신앙과 의로움, 이 모든 것은 거짓된 것이었나? 과연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과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요셉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침묵의 순명이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침묵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요셉의 침묵은 내려놓음과 자신의 봉헌을 통한 구원협력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섬기는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모든 범위를 초월하며 펼쳐진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 그 새로움에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진정한 신앙을 찾 것이고, 더불어 주님 구원 사업의 협력자라는 이름을 올리게 된 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의 신비입니다. 그 신비에는 우리의 생각, 삶의 형태, 나만의 믿음이라는 유혹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그것들은 신앙의 신비와 항상 갈등 속에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신앙을 찾는,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다시금 바라보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러한 여정 안에서 우리의 생각이 아닌,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방법을 찾아가는 신앙인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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