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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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940회 작성일 22-12-15 10:24본문
같은 자리, 같은 상황과 환경에 있어도 우리 각자에게 보이는 것은 다르게 마련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느껴지고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다름'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라는 그 대상 자체보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과의 관계입니다.
현상적으로 바라볼 때,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그 대상 자체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관련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라보는 주체는 자신이며, 그 대상은 그저 자신의 눈 앞에 있을 따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저 단순히 내 앞에 있는 대상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며, 그 대상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이는 외면적 모습을 넘어서 감추어진 모습까지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하느님을 단순히 자신의 삶의 틀에만 가두어 둘 때, 하느님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창조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내가 만든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만들 수 없는 하느님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분의 감추어진 모습을 하나씩 파헤쳐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쌓아가길 원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도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감추어진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겠습니까? 다양한 종교 안에서 왜 우리는 이 교회 안에서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까?
가톨릭 교리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 그분과 함께 하는 그 영원함을 위해서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 교리는 우리에게 영원함을 주지 못합니다. 선택은 우리 자유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신앙을 선택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하며,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간단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시간 속에서 영원함을 한결같이 간절히 바라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시간 속에서 영원함으로 움직이고 있고,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것이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우리와의 특별한 관계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총으로 이 현실에서 무의식 중에 우리의 믿음이 그분께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것이며, 우리 삶 안에서 습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기 전에, 그분께서 당신에게 우리의 눈을 조금씩 열어주심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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