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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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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98회 작성일 22-12-1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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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건이나 일들을 그 사실대로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어떠한 대상의 진면목과 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그저 겉모습에 대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감추어져 있는 다른 활동이 있을 수 있고, 우리 각자가 만든 또 다른 해석과 이해의 차이, 각자에게 다가오는 정도가 다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내면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100%의 모습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실됨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먼저 진실됨에 대한 우리 각자의 판단을 멈춰야 합니다. 그 진실됨은 내가 만든 진실됨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든 진실됨은 거짓이나 다름 없습니다. 진실됨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공통분모 안에서 객관적이고 다양한 다가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그릇된 진실, 거짓은 다른 이들을 선동하여 그 거짓된 무리 속에 빠져 들게 함으로 그 대상자를 죽이는 행위, 즉 악마의 행위이며, 공동체와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킴으로 자신을 정당화시킵니다. 이로 인해 진실됨은 어쩔 수 없이 내적, 외적 상처를 받고 시련 속에 머물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실됨은 판단 중지라는 숙제를 남겨줍니다.

그리고 진실됨은 기다림이라는 조건을 둡니다. 앞서 말한 판단 중지에 동반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단을 중지하기 위해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중도의 입장에서 꾸준하게 바라보는 기다림입니다. 순간적으로, 내적인 충동에 의해서 개입하고 싶을 때가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지만 그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실됨은 주위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요구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이에 대한 타인들의 판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자신을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타인의 달콤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여러가지 소문들을 들을 때, 그것이 말하는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지, 아니면 진정 타인을 위한 사랑과 배려에서 이야기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 기울이는 신앙인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짓에 기울이지 않고, 버려야 하는 건 버리며, 간직해야 할 것만 지니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은총을 청하는 가운데 참된 생명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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