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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연중 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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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697회 작성일 23-01-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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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하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합니다.

저는 가끔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대목을 가지고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당신을 모욕하며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질한 이들까지 용서해달고 청하신 분, 무수히 많은 매 맞으면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죄악을 하나하나를 성부께 고통을 통하여 보속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이렇게 온 세상의 어둠을 창조주인 하느님께 고통이란 보속을 통해 빛으로 바꾸시는 것이 어린양의 뜻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절에는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빛으로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것을 믿어 고백하지만 빛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나 합니다. 왜 그럴까 빛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지금껏 익숙해져 있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 버겁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닐까?합니다.

저는 문뜩 미션이란 영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신부가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저 오지의 밀림에서 원주민들과 어울려 살고 그들에게 신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이 지역이 포르투갈 식민지가 되면서 원주민들은 쫓겨나게 되었고, 선교사는 그에 맞서 원주민들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한쪽은 무력으로 다른 한쪽은 비폭력으로 맞서며 이 영화는 원주민들의 죽음과 이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브리엘 신부의 ‘무력이 옳다면, 세상에 사랑은 슬 자리가 없을 겁니다.’라는 말이 이 후 내내 제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처럼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말씀과 같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세력도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나 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생각하며, 시기와 질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무력과 폭력이란 죄의 자리에 빛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용기를 대치한다면 죄란 세상에 슬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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