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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무죄한 아기들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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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98회 작성일 22-12-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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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서 죄 없는 아기들의 순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죽음이라는 현실도 모르는 이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것도 예수님과 같은 아기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중심에 계시는 아기 예수님 때문에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이들, 특히 그 아기들의 가족들이 이러한 현실을 신앙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알기 전, 그 가능성마저 빼앗긴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교리상의 신앙으로 그들에게 가장 순수한 순교의 월계관이 씌여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언정, 현실 안에서 신앙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인 신앙 안에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침묵이 아닐까 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아무리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져 준다 한들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분명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심정을 완전한 공감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무죄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지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침묵과 내면의 공감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신앙적 입장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나눔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신앙적 위로는 그들을 신앙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들과 현실적인 내면의 공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무죄한 이의 죽음 속에 감춰 있는 신앙과 현실의 정의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죽음이 죽음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죽음으로 가려진 생명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의와 올바름이 분명히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합니다. 침묵 속 행위에서, 무언 속에서 지속되는 행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무죄한 아기들의 순교는 우리의 삶을 더욱 예수님화시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그들의 삶을 채우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채워야 할 이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러한 채움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나누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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