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타적 겸손을 통한 세례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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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45회 작성일 23-01-06 09:41본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요한과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 두 분은 세례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 하나됨을 축복해주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시고, '죄'라는 영역 밖에 존재하시는 그분께서 세례를 받으심은 그분께서 인간의 형상을 취하신 존재임을 재확인시켜주는 사건입니다. 여기에 성령의 축복이 함께 함으로 그분의 인성과 신성이 일치되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과장된 낮춤이나 자존감에 대한 지나친 겸손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이 선포는 그렇게 할 수 뿐이 없었던 내적인 고백입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뜻에 그는 다른 대답과 고백이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영혼은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는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성자 예수님의 삶이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하느님이시지만 인간의 형상으로 살아감으로, 인간 존재로 겪어야 할 모든 것을 수용하겠다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약속입니다. 또한 당신 자신의 인성은 하느님을 드러내는데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세례을 통해서, 우리가 묵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타적 겸손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분명 자신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할 때, 결국 우리는 혼자 남게 됩니다. 하지만 나와 동시에 타인들을 생각할 때, 나의 존재는 타인과 합쳐 우리라는 공동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그 공동체는 오늘 복음에서 성령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진 세례의 신비, 세례의 참 의미를 드러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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