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제대로 살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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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52회 작성일 23-01-19 09:22본문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이곳 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예수님께 몰려듭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 모여든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병고에 시달린 이들,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 이렇게 두 부류의 무리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복음에서는 이들을 언급했을까요?
이들 무리는 상징성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제대로 살 수 없었던 이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병고에 시달린 이들,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이들은 사회적, 개인적으로 그들의 자리를 잃었던 이들입니다. 그 원인이 그들의 죄와 잘못의 결과라고 간주했기에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이들은 죄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들, 더 나아가 구원으로부터 제외된 이들로 낙인 찍혀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그들은 소외될 수 뿐이 없었고, 개인적으로 위축된 삶,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더러운 영에 시달린 이들 역시 자신의 원의와 관계없이 그 영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지요. 그들은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들처럼 살 수 뿐이 없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삶입니다. 철창 없는 감옥이 그들 삶의 자리였습니다. 말하자면, 제대로 살 수 없었던 이들입니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 지위적 상승과 자신의 명성을 섬기는 현 사회는 그것들을 얼마나 소유하느냐에 따라 존재를 판단하고, 그들에게 특별함을 부여합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무언의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는 물질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 사회의 모습이고, 이를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물질에 의한 조정, 물질에 의한 정해져 버린 삶, 물질에 의해 박탈된 삶의 자유,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물질입니까? 소유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위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것입니다. 인간으로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사는 것은 자유롭게 살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하고 싶은대로에서 오는 자유가 아니라, 기본적인 것들이 보장되어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모여 든 이유가 바로 이 자유로움을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제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고 제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면에 그렇지 않은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가운데, 그들을 위해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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