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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사랑을 실천하는데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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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75회 작성일 23-02-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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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을 받을 자와 저주 받을 자에 대한 기준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형제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형제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환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복음에서 드러나는 그 기준이지요.
이는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존재 여부를 자신과 형제들의 존재 이유에 결부시키는 가운데 삶을 살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위해 베풂과 나눔, 선행의 실천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해야 하기에,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 수동적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진심어린 동정과 연민, 사랑 안에서 의지를 지니고 능동적으로 실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능동적 실천의 삶을 만들어 가기를 바라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며, 예수님을 맞이하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실천의 동기가 어찌됐건, 그것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실천이 됐던 일단 실천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실천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까? 실천 자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그 실천을 반복할수록 그것은 조금씩 우리 삶 안으로, 나의 존재 안으로 녹아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실천들이 조금씩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총으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레 그렇게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그분께서 원하시는, 그분과 결부시키는 가운데 나와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풀어낼 수 없는 숙제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항상 처음 시작은 모든 것이 어색할 수 있고, 많은 의문과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한 부분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울타리에서 살기 위해, 그분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이로 선택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리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상황 안에서, 그것에 맞게 실천하는데 목적을 두었으면 합니다. 분명 우리의 실천에는 주님께서 무조건 동행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 내리시는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복을 누릴 수 있는 그분의 자녀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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