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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연중6주일(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려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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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701회 작성일 23-02-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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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유대인 공동체에 살아가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었으며, 율법에 충실한 삶이 구원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 같은 이들은 율법을 신봉자들이었고, 당연히 율법을 삶의 중심으로 둘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율법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원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여기서 하나에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들이 그렇게 고수하던 율법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구원의 도구로 존재하였는가 아니면 그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려고 준수했어야 하는 것인가? 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목적 역시 하느님 사랑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과 사람 중에 무엇이 우위에 있는 것입니까? 당연히 인간의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영원함을 위해서 율법을 준수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율법 자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인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율법학자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은 율법 준수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이 율법으로서 제 역할, 제 몫을 다할 수 있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주시려 오신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의 율법은 문자에서 나오는 단순히 법과 같은 개념이라면, 예수님의 율법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문자에서 나오는 율법은 자신에게만 향하게 마련입니다. 자신만 그 법을 충실히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나오는 율법은 다른 이를 향한 표현이며,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완전히 율법에 봉헌하심으로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셨고, 그 사랑의 보답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속으로 다시 돌아가시어 그분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실천하려 하는지, 진정 우리의 삶과 행동 안에 그 사랑이 묻어나는지 생각해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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