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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우리에게 먼저 주어졌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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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76회 작성일 23-03-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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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입니다. 세상에서 온갖 것을 다 누리며 삶을 살았던 부자와 세상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그저 숨만 쉬는 가운데 그 숨으로만 자신 삶의 유무를 드러낸 참으로 초라한 삶을 살아갔던 라자로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끝이 존재하는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끝이 존재하지 않는 삶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 건너감으로 인해 부자와 라자로의 주어진 새로운 삶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반대의 삶이었습시다. 세상에서 초라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던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안식을 누리는 반면에, 부자는 세상에서 깨닫고 체험하지 못한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러한 삶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단순히 세상에서 누렸던 소유과 풍요, 그리고 굶주림과 비참함에 대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세상 안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삶을 사는 이들은 불행과 고초의 삶이, 가난과 소외된 이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받을 희망의 삶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가 죽은 후에 고초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 이유는 단순히 부자가 아니라, 자신만을 챙기는 부자였기 때문입디다. 자신만을 챙기는 이들은 결국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바보 같은 부자가 될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만으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많은 것을 누릴 수는 있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게 우리의 삶을 참으로 공허하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공허함은 자신이 채우는데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채워줌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오늘 복음에서 부자는 어리석게도 자신만을 채우는 가운데 다른 이들을 외면한 동시에 아브라함의 품까지 외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라자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이였습니다. 그저 숨만 쉬며, 자신 앞에 주어지는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였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먼저 주어진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주어진 것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적 가난과 비움 속에서 순명과 따름이 드러나는 삶인 것이지요. 그럴 때,주님께서는 그 비움과 가난을 당신 사랑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와 라자로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는 진정 우리 자신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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