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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일 나눔-있는 것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삶을 만들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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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88회 작성일 23-02-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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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시어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단식의 마지막 여정이 악마의 유혹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적으로 지칠대로 지치시고, 내적인 판단력과 식별이 흐려지는 시기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 인간이셨습니다. 배고픔 속에서 육적인 갈증은 단순히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에, 인간의 존재 자체까지 흔들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인간적인 유혹을 극복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그분께서 인간인 동시에 하느님이셨기에 가능하셨음은 교회가 말하는 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신학은 현실에 적용되어야 진실된 신학으로 성립되기에, 우리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이에 접근해야할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욕구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욕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된다면 개인적 차원으로 넘어가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구, 물질에 대한 소유욕,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 등 인간의 욕구는 하나가 충족될 때마다, 멈추지 않고 또 다른 하나가 우리를 자극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인간적 욕구가 없으셨던 분이십니까? 그분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기에, 죄 말고는 우리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과 욕구가 없다는 것은 다른 차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의 없음은 본성적 특징을 의미하는 것이며, 욕구의 없음은 존재론적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와 욕구의 관계 안에서 예수님의 존재를 바라보자면, 예수님께서도 분명 욕구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까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즉, 욕구에서 모든 것이 끝났던 것이었습니다. 욕구의 다가옴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만족'이라는 표현으로 드러납니다. 그분은 현재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만족하시며 살아가셨던 분이십니다. 당신께 주어진 것의 가치와 소중함을 즐기며 살아가셨던 것입니다. 외적인 것에 대한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으셨던 것이지요. 그저 있는 것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악마의 유혹 속에서도, 그것들이 필요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있는 것에 만족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쉽게 지나치는 것을 얻기 위해 사투를 버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에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며, 감사하고 살아가는지 생각해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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