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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우리는 존재하고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존재하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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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667회 작성일 23-03-3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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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자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자신의 위치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안감을 느끼던 유다인들은 이제 예수님께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힙니다. 그것들이 그들 마음을 사로잡고, 그 사로잡힘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는 생명의 대상이셨지만, 유다인들에게는 죽음의 대상이 되십니다.

왜 그들은 생명을 주시고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죽음의 대상으로 몰아세우게 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유혹이 현재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대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좋은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던 것은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구원의 행위와 기쁜 소식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이들을 위한 하느님이 아니라, 그들만의 하느님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하느님을 만들어간 이들이 아닐까 합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그들만의 생각 안에서 하느님을 끼워 맞추려는 참으로 어리석고도 미련한 방식으로 그분의 존재에 접근하려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자기 방식대로의 하느님 존재였기에, 그들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가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주님의 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분의 존재는 우리의 틀에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꾸 각자만의 틀에 맞추려고 할 때, 그분의 존재는 안개 속에 감춰져 있는, 우리의 삶 안에서 체험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그분을 단순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의 변화, 환경과 상황에 따른 우리의 변화, 그 안에서 오는 인간적인 감정과 내적인 움직임은 항상 달리 느껴지기에 마련입니다. 그 안에서 그분을 결부시킨다면, 그분은 그때 그때 달라지시는 분이 되시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가장 단순하게 바라보는 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다양한 변화와 당장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의 상황일지라도 '그래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존재하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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