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그분께 희망을 두는 가난한 과부가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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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02회 작성일 23-06-10 12:45본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세상에 자신들을 드러내려는 율법학자들의 거짓된 선행과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짐을 지우는 그들의 교만의 어리석음을 말씀하시며, 간접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겸손한 자녀, 세상에 드러남이 아닌 그분 앞에 부끄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이가 되라는 가르침을 주시는 듯합니다. 이어서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의 비유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율법학자들, 그리고 부자의 헌금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모두 하느님을 신앙하는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과 부자들, 그리고 가난한 과부는 다른 지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것이 어떠하든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 드러남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지요.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외적인 행위로 드러나기에,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그분께 먼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외적으로 드러날 때, 세상과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하느님께, 그리고 한 번 포장을 한 모습으로 이차적으로 세상과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율법학자들과 부자들은 일차적 드러남의 대상을 외면한 채, 이차적 드러남 안에서 그들의 만족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철저히 준수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영광을 위한 신앙의 삶일 뿐이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세상이 아닌 오직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봉헌 속에는 '하느님이 아니시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는 그녀만의 간절한 고백이 내면으로부터 울려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영광만을 지향할 때, 누군가는 희생과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참여의 삶을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실 것이며,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진정 우리는 어떠한 삶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만을 위한 율법학자, 부자들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오직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가난한 과부의 모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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