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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주님의 뜻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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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38회 작성일 23-06-2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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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는 요한의 모습은 자신의 온 존재를 하느님 뜻에 맡긴 가운데, 오직 그분께 희망을 두었던 이로 드러납니다.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이 삶은 참으로 허무하고 어리석은 삶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지만,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인 것이지요. 세상에 희망을 두었다면 유한한 세상과 함께 그 희망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분께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봉헌함으로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제2독서에서 요한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 앞에서 인간의 모습이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일컫는 겸손을 넘어서는 고백입니다.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처지를 바라볼 때, 당연한 내적 상태와 외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겸손은 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찬미와 참 인간이신 예수님의 놀라운 강생의 신비에 대한 찬미가 담겨 있습니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요한의 찬미와 그분께 사로잡힘에 대한 능동적이며, 수동적인 '겸손'이지요.

이어서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순리가 아닌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준비된 자임이 드러납니다. 즈카르야의 친척들 가운데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없었음에도 엘리사벳은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해야함을 고집하며, 즈카르야 역시 그렇게 하자 그의 혀가 풀리게 됩니다. 세상의 뜻이 아닌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이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 안에서 특별히 다가오는 그의 삶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그의 삶의 한 부분을 더욱 구체화시키며, 우리의 삶으로 스며들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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