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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상대성을 받아들이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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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34회 작성일 23-07-1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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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아버지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 증언의 섭리가 이루어짐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증언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신앙인이 왜 저런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의구심을 던지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당연한 의구심이고, 삶 안에서 신앙인으로 항상 올바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올바름의 기준 역시 각자마다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죄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안에서 절대적인 올바름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안에서, 이와 같은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역시 다른 이들이 보기에 '왜 그럴까?'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성향, 살아온 환경, 현재 상황에 따라 그 바라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것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만 절대적이 되는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상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성과 상대성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변화하기 힘들며, 상대적인 것은 쉽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절대성은 자신에게 있고, 상대성은 타인에게 있기에, 그 내면에는 타인들의 변함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으며,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저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의문보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음'을 바라봐야 합니다. 타인은 절대로 자신에 맞춰서 변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변화를 바랄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미움과 갈라섬입니다.

하느님의 영께서는 비현실적인 절대성 안에서 현실적인 상대성이 존재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지요. 예수님이야말로 절대적인 존재이시지만, 상대적인 존재에 융화되셨습니다. 그분께서 하느님을 증언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지닌 상대성에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조금이나마 하느님의 영에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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