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의 커뮤니티입니다.

묵상나눔

나눔-연중20주일(모든 이의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047회 작성일 23-08-20 09:02

본문

우리는 완전하신 분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의 삶은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감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하느님의 자녀로 그분의 섭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보시기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시기에 몸과 마음의 따름이 아닌, 단순히 입을 통한 표면적 고백만으로 살아가는 이들, 하느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믿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정 이들 모두에게 같은 하느님으로 존재하시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결론은 모든 이에게 같은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든 변함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불변하신다는 진리가 본질적인 근거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지워지지 않는 신분을 지니고 있지만, 끊임없는 변함의 반복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의 변함에 관계없이 늘 같은 마음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의 아버지로 계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의 아버지시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그분의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언젠가 당신께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계신 것이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모두를 당신의 집에서 만나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의 간절한 청을 받아주시는 모습이 복음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여인의 청원에 냉정함을 드러내십니다. 마치 당신의 삶과 무관한 여인처럼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그녀의 청을 들어주셨겠습니까? 그것은 그녀가 진심으로 그분께로 돌아왔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돌아온 이를 절대로 내치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러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분께서 항상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심에, 우리 역시 그분을 향해야 합니다. 서로를 향해 있을 때 마주칠 수 있고, 마주칠 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으며,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향하는 가운데 그분과 진심어린 만남의 시간을 갖으셨으면 좋겠습니다.

4a6d1ad440c2b8bde97b57e14621710c_1692457593_0837.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