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의 커뮤니티입니다.

묵상나눔

나눔-사순5주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4회 작성일 26-03-22 20:33

본문

오늘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에게 생명을 다시 허락하십니다.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이 당신의 모든 행위와 기적들은 자신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밝히십니다.
 
라자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소중하고도 고귀한 생명을 예수님으로부터 다시 선물로 받은 이였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 것이지요.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후, 예수님의 마음을 잠시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행위, 라자로의 부활 사건 자체에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군중들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심을 믿고, 그분의 영광에 마땅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인간 안에 당신의 영을 넣어주시어, 우리를 살리시는 분임을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살리시는 분은 당신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시라는 것이지요. 생명은 하느님 아버지께 속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항상 우리를 살려주시는 생명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생명은 무엇인지, 그분께서는 과연 우리를 살리고 계시는지 하는 물음을 지닐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살리심은 우리 입장에서 그때 그때 순간처럼, 그리고 현상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날 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때의 순간이 아닌, 매 순간 우리를 살리십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분의 살리심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현실 안에서, 자신만의 고통, 어려움, 시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를 늘 살리고 계시다는 증거이지요. 놀랍고도 은혜로운 살아 있음의 신비가 아닐까 합니다.
 
살아 있음의 신비에 있는 우리의 합당한 응답으로 오늘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는 육이 아닌 하느님의 영, 즉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육적인 부분에 대한 돌봄을 간과하며 살아갈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육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 우리의 생명에 중심에 자리하는 하느님의 영의 현존을 무관심의 영역 안에 넣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는, 하느님 아버지의 살리심에, 우리 역시 그분과 함께 자신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기꺼이 허락하시고, 초대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가 보여드려야 할 마땅한 응답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를 늘 살리시는 그분께 감사드리며, 우리 역시 그분과 함께 자신을 살리고, 살아 있는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을 살리는 신앙인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