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없는 잉태 교의의 근거 : “나는 원죄 없는 잉태다!”(Immaculata concep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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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788회 작성일 20-04-02 21:44본문
나는 미국 뉴욕에 간 일이 없다. 하지만 뉴욕 앞 바다 섬들 중 하나인 리버티 섬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는 것은 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지만, 그곳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파리에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곳에 에펠탑이 있다는 것을 안다. 또 나는 세종대왕님을 만난 일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세종대왕님이 존재했고, 그 분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가톨릭 신앙인들은 성모님이 잉태되는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 역사 안에서 신앙인들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믿어왔다. 나 또한 역사가 확실하게 증언하니까, 그 증언을 믿는다. 이것을 조금 어려운 용어로 표현하면 ‘대중 신앙감’(Sensus Fidelium)이라고 한다.
마리아 신심의 발전은 오랜 기간 신앙인들의 가슴속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온 신앙감에 의한 것이다. 그에 따라 이미 1438년 피렌체 공의회에서 원죄 없는 잉태 축일이 인준되었고, 1695년 교황 인노첸트 12세는 미사 경본과 성무일도를 확정하여 전체 교회에 공인했다. 또 1708년에는 교황 클레멘스 11세에 의해 의무 축일이 되었으며, 이어 교황 비오 7세와 그레고리오 14세에 이르러 미사 감사송에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칭호가 사용되었다.
교황청과 신학자들이 결정하고 신자들이 따른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느끼고 교황청이 따라간 것이다. 성령의 도유를 받은 신자들의 총체가 공통적 신앙감을 지니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 그 총체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교회 헌장」 12항 참조)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을 통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교의를 공식 선포한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시는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으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게 보호되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91항)
교의가 선포되자 개신교회에서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성경에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교회는 이렇게 설명한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이 성경구절을 통해 우리는 마리아가 천사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은총으로 가득 덮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천사를 만난 후 은총 받은 것이 아니었다. 천사를 만나는 그 시점에 은총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구약의 하느님이 메시아와 함께 악마에게 대적할 여인을 약속하셨고(창세 3,15 참조), 신약의 하느님은 그 여인으로 ‘이미 은총 가득한’ 마리아를 선택하셨다.
더 나아가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교회의 믿음이 오류가 없다는 것을 보증하는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다. 교의 선포 4년 후…. 1858년 성모님이 프랑스 루르드의 작은 동굴에서 14세 소녀 벨라뎃다(Bernadette, 1844~1879)에게 발현하신다. 소녀가 질문한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성모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나는 원죄 없는 잉태다!”(Immaculata conceptio)
여기서 성모님의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고 해서, 성모님을 인간이 아닌 어떤 신적인 존재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성모님은 여신이 아니다.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하여 원죄의 사함을 받듯이, 마리아 또한 구세주를 담을 모체로 선택되면서 원죄의 사함을 받으셨다.
내가 속한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의 원래 이탈리아어 공식 명칭은 ‘원죄 없는 잉태의 아들들의 수도회’(Congregazione dei Figli dell'Immacolata Concezione, CFIC)이다. 우리 수도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숭배하지 않는다. 인류 구원을 위해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라는 기적을 보여주신, 또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의 원죄를 사해주시는 위대한 하느님 사랑을 찬미한다. 그 하느님 사랑을 가장 완벽하게 받아들인 순결한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한다.
김광수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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