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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비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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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68회 작성일 20-01-0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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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 상암동에 있는 한 성당에 미사 주례를 위해 찾아간 일이 있다. 내가 있는 경기도 용인에서는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였다. 초행길이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똑똑한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말이다. 새벽미사 때 부른 성가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차에 올랐다. 마시다 반쯤 남은 커피를 운전석 옆에 내려놓고, 안전벨트를 맸다.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고, 목적지 설정을 했다. 곧 목적지가 나왔고, 나는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엄지와 검지를 벌려 화면을 확대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성당 인근에 정체 모를 기지가 있는 것 아닌가. ‘? 무슨 첩보 영화도 아니고, 내비게이션에 기지가 뜨다니.’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자세히 봤는데, 확실히 그것은 기지였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다. ‘문화비축기지!’ 한때 국가 1급 보안시설이었다고 한다. 19731차 석유파동 이후 석유를 보관하던 석유비축기지가 그곳에 있었단다. 14, 축구장 22개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 기지는 2002년 월드컵 개최 당시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폐쇄됐다.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가 된 것은 20179.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을 통하여 명칭을 문화비축기지로 정하고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과거 석유를 비축했던 6개의 대형 탱크 및 그 주위에서는 현재 공연과 전시, 장터 등이 열리고 있다. 특히 탱크 중 하나(T3)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석유비축기지 조성 당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비축기지라는 명칭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문화가 잔뜩 비축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와 맘껏 퍼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화비축기지를 보면서 문득, 내게도 신앙비축기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의 행복이 잔뜩 비축되어 있어, 언제든지 찾아가 맘껏 퍼 담을 수 있는 그런 은밀한 기지 말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의 샘물을 비축한 믿음의 기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신선한 공기를 비축한 희망의 기지, 5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보관하고 있는 예수님 사랑의 기지. 이런 신앙비축기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비게이션이 문화비축기지를 찾을 수 있게 도왔던 것처럼, 마음속 신앙 내비게이션을 켜면 신앙비축기지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마태 7,7라고 하셨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속 내비게이션을 찾아 꺼냈다. ON 전원 버튼을 눌렀다.





· 최의영 안드레아 신부( 동아시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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